본문 바로가기

불면의 밤에

사적인 불면의 역사

오늘로써 3일째다. 약을 먹고 있지만, 잠은 전혀 오지 않는다. 

 

다행인 것 하나는 다리가 아프지 않다는 것. 어제까지만 해도 다리가 자꾸만 저려오는 탓에 잠에 들지도, 다른 것을 할 생각도 못 했다. 오늘 낮에 부러 나가 사 온 파스가 효과가 있었나 보다. 

 

불면을 앓은 지는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. 첫 불면은 고등학생 때였다. 일명 ‘하지불안증후군’이라는 알 수 없는 증상이 있어 밤마다 저린 다리를 주무르며 깼던 기억이 남아 있다. 그렇게 한참을 몸부림치다 거실 소파에 나와 높은 등받이 쿠션에 다리를 올리고 나면 그제야 잠에 들 수 있었다. 

 

해결책이 없는 불면도 있었다. 대학교 2학년 때, 아직까지 원인도, 병명도 알 수 없는 증상이 찾아왔다. 여름방학이었는데 밤에는 한숨도 못 자다가 새벽녘에 동이 틀 때쯤에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. 그걸 부모님도 알았는지 부러 아침에 깨우시지 않았고, 그렇게 나는 정오까지 자다 일어난 후 점심을 먹고 다시 낮잠을 까무룩 잤다가 일어나서 저녁을 먹은 후 밤에 잠들지 못해 괴로워했다. 당시 나는 모든 것을 불안해했다. 집에 있다가 아파트가 무너져 깔려 죽을까봐 무서웠고, 자전거를 타고 나간 동생이 갑자기 사고를 당할까 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. 잠이 들지 않는 밤이면 모종의 이유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죽어버리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. 그렇게 두 달의 방학을 지내면서 다시는 바깥 세상으로 못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. 하지만 내게는 주어진 일이 있었고, 그래서 서울로 돌아와 복학을 해야만 했고, 벌벌 떨면서 학교를 2주 정도 다닌 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. 

 

5년 전, 눈물로 날을 지새우는 날도 있었다. 사랑한다고 믿었던 — 그러나 완전히 착각이었던 — 사람과 헤어진 후 몇 달은, 아니 정말 해가 넘어가도록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. 잘 마시지도 못하던 술을 늘 새벽까지 마셨고, 일하는 시간과 술 마시는 시간을 제외하면 늘 울고 있었다. 울면서 미친 사람처럼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답장을 기다리고, 그러면 또 답장이 오고, 그렇게 또 울고. 매일 새벽에 자고 새벽에 깼다. 그리고 깨어 있는 시간은 죽어버린 것만 같았다. 그렇게 일찍 일어난 어느 날, 페이스북을 우연히 켰다가 친구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. 말도 안 돼, 그 글을 올린 친구의 동생에게 메신저를 보냈고, 사실이라는 답을 들었고, 그걸 다시 동아리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했다. 그날은 이직 면접을 보는 날이었는데, 새로운 회사 옆 카페에서 면접 10분 전까지도 펑펑 울다가 들어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대답을 하고 나와서 다시 울었다. 5년 전 불면의 끝자락은 실연 — 그것이 애인이든, 친구들 — 의 아픔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. 

 

그렇다고 10년 동안 제대로 자지 못했던 건 아니다. 아빠와 엄마가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던 덕분에 나는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, 약의 도움을 받은 후로는 잘 자는 날이 훨씬 많았다. 어쩐지 멜랑꼴리한 밤이면, 그래서 나를 미워하게 될 것만 같은 때면 그럼에도 숙면을 취할 수 있다는 게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. 

 

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밤은 약 없이도 잘 잤다. 왜인지, 그가 옆에 있으면 자꾸만 나른한 기분이 들어 하품을 멈출 수가 없었다. 잘 자라고 토닥토닥해주는 손길에 금세 스르륵 잠이 들곤 했다. 꼭 껴안을 때 전해지는 체온이 기분이 좋았다. 

 

어제오늘의 불면은 특징이 없다. 그래서 아마 몇 년 후엔 기억도 못 할 것이다. 이 즈음의 내가 잘 자지 못했다는 것을. 평범한 불면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. 지난 평범한 불면 땐, 잠 자는 것을 포기하고 일어나 드라마를 봤다. 뭐든지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5시간쯤은 훌쩍 지났고 동이 틀 때 즈음 침대에 누우면 쉬이 잠들 수 있었다. 이번에는 글을 써보면 어떨까, 하는 생각이 들었다. 몇 밤의 글이 모이려나. 아마 이 원고가 가물가물해질 즈음엔 다시 잘 자고 있을 것이다. 

 

'불면의 밤에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개운한 불면  (0) 2021.07.13